LP 열풍이다. 아이돌 가수들도 LP를 내고, 집에 턴테이블이 없어도 LP를 산다. 김민기나 브라운아이드소울 LP는 부르는 게 값이고, 명반은 하루가 멀다하고 리이슈 LP가 나온다. 오디오 좀 한다는 사람들은 ‘아날로그 재생’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하지만 LP는 어렵고 수고스럽다. 갖춰야 할 것, 신경써야 할 것이 은근히 많다. LP를 돌리는 턴테이블, 흔히 ‘바늘’이라고 부르는 카트리지, 이 카트리지를 잡아주는 톤암, 카트리지의 아주 약한 소리를 증폭해주는 포노앰프 등등. 종류도 많고 가격대도 천차만별이다.
뿐만 아니다. 침압계, 수평계, 스트로보스코프, 심지어 먼지 및 정전기 제거 솔 등이 없으면 제대로 LP를 들을 수가 없다. 퍽 튀고, 쨍 쏘고, 축 처지고 난리도 아니다. 약간의 지식과 노하우도 필요하다. 부하 임피던스를 제대로 못맞추면 음은 찌그러지고, 포노EQ 커브를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면 그냥 눈앞에 있는 보물을 놓치고 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LP와 턴테이블을 산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1. 디지털 음원에는 없는 그 무엇, 아날로그 음원만이 전해주는 그 미끈하고 포근하며 따뜻한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2. 우리가 흔히 아는 클래식과 재즈, 가요 명곡 대부분이 LP에 담겼다.
3. 커다란 LP 재킷이 주는 시각적 포만감과, 턴테이블 및 톤암이 선사하는 기계적인 미학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다.
LP는 또한 재생음악의 출발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LP가 뱅글뱅글 돌고 그 소릿골 위를 카트리지가 활강하면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는 요즘 유행하는 스트리밍 음원 재생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피지컬한 맛이다. 카트리지, 톤암, 턴테이블, 포노앰프에 내가 건드릴 것이 많다는 점도 복되다.
LP 재생 메커니즘 : 신호 흐름을 추적해보면
달리 생각하면 LP를 듣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시중에 나와있는 올인원 턴테이블을 사면 된다. 톤암과 카트리지, 포노앰프를 모두 갖춰 집에 앰프와 스피커, 아니면 액티브 스피커가 있으면 곧바로 LP를 들을 수 있다. 어떤 올인원 턴테이블은 아예 앰프와 스피커, 심지어 블루투스 기능까지 갖췄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초보자에게 LP 재생의 맛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이들 올인원 턴테이블의 공은 결코 폄하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LP가 어떤 경로를 거쳐 소리가 나는지 모르면 아날로그 재생의 맛은 반의 반도 모른 채 넘어가는 것이다. 하물며 앞으로 턴테이블, 톤암, 카트리지, 포노앰프를 하나하나 장만할 계획이라면 전체 조감도를 그려보는 것이 옳다.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을 건드릴 수 있는지 알아야 나만의 마스터 아날로그 음원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LP 재생은 당연한 얘기지만 LP에서 시작된다. LP를 가까이서 보면 아주 얇은 홈이 원을 그리며 길게 새겨졌는데 이 소릿골(그루브. groove)에 음악 정보가 담겼다. ‘담겼다’는 표현도 사실 틀린 말이다. 소릿골 모양이 곧바로 음악 정보다. 스테레오 음악의 경우 소릿골의 안쪽이 왼쪽 채널, 바깥쪽이 오른쪽 채널이고, 소릿골이 넓고 깊게 파이면 저음, 좁고 얇게 파이면 고음이다.
LP에 이 소릿골은 어떻게 새겨졌을까. 이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처음 시작은 커터 헤드(cutter head)다. 자신에게 들어온 전기에너지(음악 신호)를 운동에너지(새김)로 바꾸는 기계, 또는 끌이 달린 모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커터 헤드에 음악 신호를 보내주는 것은 아날로그 테이프나 디지털 디스크에 담긴 마스터 음원. 그리고 이 커터 헤드가 처음 소릿골을 새기는 원판이 바로 래커(lacquer) 디스크다.
이 때 그 유명한 포노 EQ커브가 개입된다. 래커 원판이나 최종 결과물인 LP 모두 두께가 얇고 폭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일부러’ 정보가 왜곡된 소릿골을 새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저음을 원래보다 덜 파내는 것이 핵심. 대신 LP 재생시에 ‘약속’에 맞춰 저음을 더 증폭시키면 결과적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원래 저음이 재생된다는 논리다. 고음은 그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래커 원판이 완성되면 그 위에 실버링 및 니켈 도금 작업을 한 뒤 도금된 부분을 떼어내는데, 이 떼어낸 얇은 니켈 판이 파더(Father) 디스크다. 때문에 파더 디스크는 래커 원판과는 소릿골이 반대다. 래커 원판은 오목하고(negative), 파더 디스크는 볼록하다(positive). 파더 디스크에서는 다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마더(Mother) 디스크를 얻는데 마더 디스크는 짐작하셨겠지만 소릿골이 오목하다.
마더 디스크에서는 메탈 스탬퍼(Stamper)가 만들어진다. 각각 A면과 B면을 담당하는 스탬퍼 사이에 반고체 상태의 PVC를 넣고 고온 고압으로 압착하면(프레싱), 마침내 LP가 탄생한다. 스탬퍼는 말 그대로 도장처럼 소릿골이 볼록해서, 최종 결과물인 LP에는 래커 원판과 똑같은 오목한 소릿결이 새겨진다. 이 과정은 뒤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턴테이블은 이렇게 탄생한 LP를 일정 속도로 돌리고, LP에 새겨진 소릿골을 추적해 다시 전기에너지를 뽑아내는 장치다. LP를 돌리는 메커니즘에는 LP를 얹히는 플래터와 이 플래터를 돌리는 모터가 필요하고, LP 소릿골을 추적하는 메커니즘에는 포노 카트리지와 이 포노 카트리지가 장착된 톤암이 필요하다. 이게 턴테이블을 이루는 핵심 4인방이다.
LP 소릿골과 처음 만나는 것은 포노 카트리지다. 일종의 모터였던 커터 헤드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운동에너지(트래킹)를 전기에너지(음악 신호)로 바꾸는 일종의 발전기이다.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기처럼, 소릿골을 열심히 추적한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전기를 얻는 것이다.
포노 카트리지는 자석과 코일의 상호 메커니즘에 따라 MM(Moving Magnet)과 MC(Moving Coil) 카트리지로 나뉘는데, 두 카트리지 모두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은 동일하다. MM 카트리지가 통상 5mV, MC 카트리지가 통상 0.5mV의 전기에너지를 만들어낸다. MC 카트리지의 전기값을 MM 카트리지의 대략 10분의 1로 보면 된다.
카트리지에서 생산된 음악 신호는 포노케이블을 타고 포노앰프로 들어간다. 포노앰프가 필요한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자신에 들어온 ‘왜곡된’ 음악신호를 ‘약속’에 따라 보정하는 일이다. 이 ‘약속’의 대표적 사례가 RIAA 커브인데, 저음은 500Hz에서 최대 6dB 부스트 시키고, 고음은 10kHz에서 최대 -13.7dB 감쇄 시킨다. 그래야 원래 플랫한 음악 신호가 복원이 된다.
포노앰프의 두번째 책무는 통상 최대 5mV에 불과한 미세한 음악신호를 증폭해 뒷단인 프리앰프에 넘겨주는 일이다. 왜냐하면 프리앰프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전압이 통상 최소 0.5V인 것을 전제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결국 포노앰프는 5mV MM 신호는 100배, 0.5mV MC 신호는 1000배를 증폭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MM 포노앰프의 게인이 통상 40dB(100배), MC 포노앰프의 게인이 통상 60dB(1000배)인 것은 이 때문이다.